어렸을 때부터 같은 용돈으로 살 수 있는 과자와 장난감이 점점 줄어드는 게 이상했습니다. 왜 물가는 계속 오르기만 하는 걸까요? 경제를 공부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물가 상승이 단순히 나쁜 현상이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이라는 두 경제 현상은 각각 좋은 형태와 나쁜 형태로 나뉘며, 어떤 방식으로 발생하느냐에 따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저는 이 원리를 이해한 후 제 자산 관리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꿨고, 현금을 보유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깨달았습니다.
화폐가치 변동으로 보는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
인플레이션(inflation)은 물가가 상승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여기서 인플레이션이란 화폐 공급이 증가하며 전체적인 물가 수준이 올라가는 것을 의미하는데, 쉽게 말해 같은 돈으로 살 수 있는 물건의 양이 줄어드는 겁니다. 천 원으로 살 수 있던 포인터가 만 원이 된다면, 포인터 가격이 오른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동시에 화폐 가치가 떨어진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디플레이션(deflation)은 물가가 하락하는 현상입니다. 여기서 디플레이션이란 화폐 가치가 상승하며 물가 수준이 전반적으로 내려가는 것을 의미하는데, 쉽게 말해 같은 돈으로 더 많은 물건을 살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천 원짜리 포인터가 백 원이 되면, 예전에는 천 개의 원화를 줘야 살 수 있었던 물건을 이제는 백 개의 원화만으로 살 수 있으니 화폐 가치가 올랐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물가가 내려가면 좋을 것 같지만, 실제 경제에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일본이 1990년대 이후 30년간 디플레이션 늪에 빠져 장기 불황을 겪은 사례가 대표적입니다(출처: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 중요한 것은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이 어떤 원인으로 발생하느냐입니다.

경제순환 측면에서 본 좋은 인플레이션과 나쁜 인플레이션
한국은행을 비롯한 글로벌 중앙은행들은 연 2% 정도의 완만한 인플레이션을 적정 수준으로 봅니다(출처: 한국은행). 좋은 인플레이션은 실물경기가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수요 견인 인플레이션입니다. 여기서 수요 견인 인플레이션이란 경제가 활성화되어 소비자들의 구매력이 증가하면서 물가가 상승하는 현상을 말하는데, 쉽게 말해 경제가 좋아져서 사람들이 돈을 더 많이 벌고 더 많이 쓰면서 물가가 오르는 겁니다.
실물경기가 좋아지면 다음과 같은 선순환이 일어납니다.
- 기업 실적 개선으로 고용 증가
- 소득 상승으로 구매력 강화
- 수요 증가로 적정 수준의 물가 상승
- 기업 투자 확대로 다시 고용 증가
저도 이런 선순환 구조를 이해하고 나서, 물가 상승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소득 증가 없이 물가만 오르는 게 문제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마치 키가 크는 만큼 몸무게가 적절히 늘어나는 것처럼, 경제가 성장하는 만큼 물가가 완만하게 오르는 건 건강한 신호입니다.
반면 나쁜 인플레이션은 비용 인상 인플레이션입니다. 여기서 비용 인상 인플레이션이란 생산 비용이 급등하면서 물가가 오르는 현상을 말하는데, 쉽게 말해 원자재 가격이나 인건비가 갑자기 폭등해서 물가가 오르는 겁니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유가가 급등했을 때가 대표적입니다. 중동 전쟁으로 원유 공급이 차단되면 유가가 폭등하고, 석유는 모든 산업의 기초 원료이기 때문에 전체 생산 비용이 급증합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매출은 그대로인데 비용만 크게 늘어나 순이익이 줄어들고, 투자를 축소하며 고용을 줄이게 됩니다. 결국 소득은 줄고 물가는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이 발생합니다. 여기서 스태그플레이션이란 경기 침체(stagnation)와 인플레이션이 동시에 나타나는 현상을 말하는데, 쉽게 말해 경제는 안 좋은데 물가만 오르는 최악의 상황입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는데, 물가가 오르는데도 경제가 나빠질 수 있다는 게 경제 공부를 시작하고 가장 충격적이었던 부분입니다.
자산투자로 대응하는 화폐가치 하락
디플레이션도 발생 원인에 따라 좋고 나쁨이 갈립니다. 좋은 디플레이션은 기술 혁신이나 글로벌 교역 확대로 생산성이 향상되면서 가격이 내려가는 경우입니다. 1990년대 초반 70~80만 원 하던 느린 컴퓨터가 지금은 100만 원이면 훨씬 좋은 성능을 갖춘 컴퓨터를 살 수 있는 게 대표적입니다. 이런 가성비 개선은 수요를 늘려 경제 성장을 이끕니다.
하지만 나쁜 디플레이션은 경기 침체로 발생합니다. 실물경기가 나빠지면 해고가 늘고 소득이 줄어 수요가 감소하며, 공급은 그대로인데 수요만 줄어 가격이 떨어집니다. 더 심각한 건 물가가 계속 떨어질 거라는 기대 심리 때문에 소비를 계속 미루게 된다는 점입니다. 10만 원짜리 물건이 8만 원이 돼도 더 떨어질 것 같아 안 사게 되고, 이렇게 소비를 계속 미루게 되면 기업은 물건을 팔지 못해 투자를 줄이고 고용을 축소하며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가장 무서운 건 부채 디플레이션입니다. 여기서 부채 디플레이션이란 자산 가격이 급락하면서 빚의 실질 부담이 커지는 현상을 말하는데, 쉽게 말해 집값은 떨어지는데 대출금은 그대로여서 빚만 남는 상황입니다. 1억 원 자기 자본에 4억 원 대출로 5억짜리 집을 샀는데 집값이 2억으로 떨어지면, 자기 돈은 전부 날아가고 2억 원의 빚만 남는 깡통주택이 됩니다. 제 경험상 이건 정말 무서운 시나리오인데, 자산 가격 하락기에는 부채를 갖고 있는 것 자체가 큰 리스크가 됩니다.
일본은 1990년 부동산 버블 붕괴 후 부채 디플레이션에 빠져 30년간 장기 불황을 겪었습니다. 부채 부담이 커지면 소비를 최대한 줄이게 되고, 수요 감소로 물가가 떨어지며, 기업 마진 축소로 투자와 고용이 줄어드는 악순환이 계속됩니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인플레이션은 구조적으로 피할 수 없습니다. 은행이 대출을 해주면 원금보다 많은 돈(원금+이자)이 시장에 있어야 갚을 수 있으니, 중앙은행은 계속 화폐를 공급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신용팽창 구조에서는 현금을 보유하는 것 자체가 손해입니다. 여기서 신용팽창이란 은행의 대출로 통화량이 증가하는 현상을 말하는데, 쉽게 말해 은행이 돈을 빌려주면서 실제보다 더 많은 돈이 경제에 돌아다니게 되는 겁니다.
저는 이 원리를 깨닫고 청년적금을 제외한 모든 돈을 주식, 채권, 금, 암호화폐 같은 자산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주변에서는 위험하다고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현금을 그대로 두는 게 가장 위험한 선택이라고 봅니다. 하이퍼인플레이션(hyperinflation)까지 가지 않더라도, 연 2~3%씩 화폐 가치가 떨어지면 10년 후 현금의 실질 구매력은 20~30% 감소합니다. 여기서 하이퍼인플레이션이란 물가가 급격히 폭등하여 화폐 가치가 붕괴되는 극단적인 인플레이션을 말하는데, 쉽게 말해 돈이 휴지 조각이 되는 상황입니다.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이 1차 세계대전 배상금을 갚기 위해 무분별하게 화폐를 발행하면서 마르크화가 휴지가 됐던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돈을 벽돌처럼 쌓아 땔감으로 쓰거나 벽지로 바를 정도였습니다. 인플레이션은 열심히 일하고 저축한 사람을 가장 힘들게 만드는 거대한 반전입니다. 개미와 베짱이 동화에서 만약 하이퍼인플레이션이 왔다면, 현금을 모은 개미는 파산하고 바이올린 하나 가진 베짱이가 부자가 되는 역설이 벌어집니다.
양극화가 심화되는 시기에 금융 문맹으로 남지 않으려면 투자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여기서 금융 문맹이란 기본적인 금융 지식이 부족하여 합리적인 경제 의사결정을 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하는데, 쉽게 말해 돈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입니다. 경제를 이해하고 내 자산을 지키는 것, 그게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