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전 세계 금융시장이 동시에 무너졌습니다. 미국 가계의 재산 19조 달러가 증발했고, 158년 역사의 리먼브라더스가 하루아침에 파산했습니다. 저는 당시 이 사건을 뉴스로만 접했지만, 나중에 영화 '빅쇼트'를 보고 나서야 그 내막이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 실감했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내 집 마련 꿈에서 시작된 일이 어떻게 세계 경제를 무너뜨렸는지, 그 시작부터 끝까지 살펴보겠습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탄생과 확산
2000년대 초반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닷컴버블 붕괴로 침체된 경제를 살리기 위해 기준금리를 6.5%에서 1%까지 낮췄습니다. 여기서 기준금리란 중앙은행이 시중은행에 돈을 빌려줄 때 적용하는 이자율로, 이것이 낮아지면 은행들도 소비자에게 낮은 이자로 대출해줄 수 있습니다. 금리가 이렇게 낮아지자 주택담보대출 이자율도 크게 떨어졌고, 집을 사려는 사람들이 급증했습니다(출처: 연방준비제도).
정부도 여기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소수민족과 저소득층의 주택 소유를 확대하겠다고 공언했고, 페니메이와 프레디맥에게 더 많은 대출을 제공하라고 압력을 넣었습니다. 2004년 미국의 주택 소유율은 69%로 역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주택 수요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 대출 기준이 점점 느슨해진 겁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Subprime Mortgage)라는 새로운 상품이 등장했는데, 이것은 신용등급이 낮은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고위험 주택담보대출을 의미합니다. 더 극단적인 경우로는 이른바 '닌자론(NINJA Loan)'이라 불리는 대출도 있었습니다. No Income, No Job, No Asset, 즉 수입도 없고 직장도 없고 자산도 없는 사람들에게까지 수십만 달러를 빌려준 겁니다.
제가 영화에서 봤을 때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강아지 이름으로도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은행들은 대출 심사를 거의 하지 않았고, 심지어 수입을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무서류 대출'까지 성행했습니다. 2005년에는 전체 주택담보대출 중 서브프라임 대출의 비중이 거의 20%에 달했습니다.
증권화와 레버리지의 위험
은행들이 왜 이렇게 무모한 대출을 했을까요. 여기에는 교묘한 시스템이 숨어 있었습니다. 전통적으로 은행은 돈을 빌려준 후 그 대출을 계속 보유했기 때문에 신중하게 심사했습니다. 하지만 2000년대에는 달랐습니다. 은행들은 대출을 발행한 후 그것을 월가의 투자은행들에게 팔아버렸습니다.
주택담보대출을 수백, 수천 개 묶어서 증권으로 만든 것을 모기지백트시큐리티(Mortgage-Backed Securities, MBS)라고 합니다. 여기서 MBS란 주택담보대출을 기초자산으로 하여 발행한 채권으로, 대출자들이 갚는 원리금이 투자자들에게 배분되는 구조입니다. 투자은행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이 증권들을 다시 잘게 나누고 섞어서 담보부채권(Collateralized Debt Obligation, CDO)이라는 더 복잡한 금융상품을 만들었습니다.
CDO는 너무나 복잡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안에 정확히 무엇이 들어 있는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그것을 판매하는 은행원들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신용평가기관들은 이 복잡한 증권들에게 최고등급인 트리플A(AAA) 등급을 줬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복잡한 금융상품일수록 더 의심해봐야 하는데, 당시 시장은 정반대로 움직였습니다.
2004년 4월,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가 투자은행들에 대한 레버리지(Leverage) 규제를 완화한 겁니다. 레버리지란 자기자본 대비 빌린 돈의 비율을 의미하는데, 쉽게 말해 1억 원을 가진 사람이 9억 원을 빌려 10억 원으로 투자하면 레버리지 비율이 10배인 것입니다. 이전에는 투자은행들이 자기 자본의 12배까지만 빌릴 수 있었지만, 새로운 규정은 이 제한을 아예 없애버렸습니다.
은행들의 레버리지 비율은 30대 1, 심지어 40대 1까지 치솟았습니다. 이것은 자산가치가 3%만 떨어져도 자기자본이 완전히 날아가는 위험한 구조였습니다. 저는 이 부분을 알고 나서 당시 금융시스템이 얼마나 위태로웠는지 새삼 깨달았습니다(출처: 미국 증권거래위원회).
부동산 버블의 붕괴와 연쇄 파산
모든 버블이 그렇듯, 이것도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었습니다. 2006년 미국 주택가격이 정점을 찍고 하락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완만했지만 점점 속도가 붙었고, 2007년 초부터 본격적인 하락세가 나타났습니다.
집값이 떨어지자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변동금리 대출을 받았던 사람들의 이자율이 크게 올라가면서 월 상환액이 갑자기 두세 배로 뛰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감당할 수 없었고, 집값이 떨어지면서 재대출도 불가능해졌습니다. 집의 가치가 대출 잔액보다 낮아진 상태를 '언더워터(Underwater)'라고 하는데, 물 아래 잠긴 것처럼 빠져나올 수 없는 상황을 의미합니다.
2007년 2월 뉴센츄리파이낸셜이라는 대형 서브프라임 대출회사가 휘청거렸고, 3월까지 20개가 넘는 서브프라임 대출기관이 파산했습니다. 채무불이행률이 급증하면서 2007년 한 해에만 130만 건의 압류 절차가 시작되었습니다.
2008년 3월 14일, 85년 역사를 가진 베어스턴스가 무너지기 직전까지 갔습니다. 연방준비제도가 급히 개입해 JP모건체이스가 베어스턴스를 인수하도록 주선했는데, 가격은 충격적이었습니다. 1년 전만 해도 주당 170달러였던 주식이 2달러로 떨어진 겁니다.
하지만 진짜 쇼크는 그해 9월에 왔습니다. 2008년 9월 15일 월요일 아침, 리먼브라더스가 파산 신청을 했습니다. 158년 역사를 가진 명문 투자은행이 자산 규모만 6천억 달러가 넘는 상태에서 무너진 겁니다. 정부는 도덕적 해이를 우려해 리먼을 구제하지 않기로 결정했는데, 이것은 재앙적인 결정이었습니다.
다음날 세계 최대 보험사 중 하나인 AIG가 붕괴 직전에 몰렸습니다. AIG는 신용부도스왑(Credit Default Swap, CDS)이라는 금융파생상품을 엄청나게 많이 팔았는데, 여기서 CDS란 증권이 부실화되면 그 손실을 보상해주는 일종의 보험상품입니다. 리먼이 무너지고 다른 증권들도 가치가 폭락하자 AIG는 천문학적인 보상 청구를 받게 됐고, 결국 연방준비제도가 850억 달러를 긴급 대출해줘야 했습니다.

실물경제로의 파급과 교훈
금융시장의 패닉은 곧 실물경제로 번졌습니다. 신용시장이 완전히 얼어붙으면서 기업들은 자금을 구할 수 없었고, 공장들이 문을 닫고 소매점들이 파산했습니다. 2008년과 2009년 사이 약 87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졌고, 실업률은 10%까지 치솟았습니다.
가장 큰 피해자는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400만 가구가 집을 잃었고, 주택가격은 평균 30% 이상 폭락했습니다. 주식시장과 주택시장의 폭락으로 미국 가구들은 약 19조 달러의 재산을 잃었는데, 수십 년간 모은 돈이 순식간에 사라진 겁니다.
위기는 미국 국경을 넘어 전 세계로 퍼져나갔습니다. 유럽의 은행들도 미국 주택저당증권에 막대하게 투자했었기 때문에 연쇄적으로 흔들렸고, 아이슬란드는 나라 전체가 파산 직전까지 갔습니다. 세계 주식시장은 2007년 고점 대비 40~60%나 폭락했고, 세계 무역은 2009년에 10% 가까이 감소했습니다.
각국 정부는 필사적으로 대응했습니다. 미국은 7천억 달러 규모의 TARP(부실자산구제프로그램) 프로그램을 시행했고, 2010년에는 도드-프랭크법을 통과시켜 대공황 이후 가장 대대적인 금융규제 개혁을 단행했습니다. 볼커룰이 도입되어 은행들이 고객 예금으로 투기적 거래를 하는 것을 금지했고, 소비자금융보호국이 신설되어 약탈적 대출을 막으려 했습니다.
저는 이 사건을 통해 몇 가지 교훈을 얻었습니다. 첫째, 자산가격이 영원히 오르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부동산 불패'라며 부동산은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고 보는 분들이 많은데, 제 생각에는 이런 과한 확신이 오히려 위험할 수 있습니다. 둘째, 복잡한 금융상품일수록 더 의심해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CDO처럼 아무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상품은 결국 문제를 숨기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현재 상황을 보면서 저는 2008년 금융위기가 다시 떠올랐습니다. 미국이 여러 나라와 갈등을 빚으면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지만, 정작 달러는 안전자산으로 여겨져 환율이 급등하고 있습니다. 2008년 당시에도 금융위기를 촉발한 건 미국이었지만 환율은 1,500원대 후반까지 올라갔었습니다. 위기의 타이밍을 맞추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영화 '빅쇼트'에서도 시장이 미쳐있고 곧 하락이 올 것 같다고 해도 시장이 바로 떨어지지는 않았고, 쇼트 포지션을 잡은 사람들조차 불안해하며 압박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위기에 대비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올인하기보다는 달러 같은 안전자산을 항상 일정 비율 유지하는 게 현명하다고 봅니다. 2008년의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않았고, 그 교훈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금융시스템은 끊임없이 진화하기 때문에 우리도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합니다.